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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지사항

[2002] 여행 19문 19답 plus one

트래블 게릴라 대원이신 안진헌님이 물어오신 내용입니다. 
2000년대 초반에 대답을 했던 것 같네요. 그냥 임의로 2002년으로 달았습니다.

1. 광범위한 질문이며 멍청한 질문이지만 "여행은 왜 하는가?"가 우선 질문사항입니다.
답)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설레임이 있습닏가. 최근에 읽은 책의 한 구절로 답을 대신해 봅니다.  
김화영 <행복의 충격>에서 재인용
"'다른 곳'은 공간에 있어서 미래다. '다른 곳'은 '내일' 속에 담겨 있는 측정할 수 없는 잠재력은 모든 젊은 가슴들을 뛰게 한다." " 떠난다, 문을 연다, 깨어 일어난다, 라는 동사들 속에는 청춘이 지피는 불이 담겨 있다. 이것은 모든 젊은 사람들이 가지는 최초의 욕망이다.


2. 여행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을텐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여행을 하게 만들었으며 한번의 여행에서 현실로 돌아와 현실과 마주하지 않고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답) 여기서 여행이란 해외 여행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외가집을 오간다던가, 아니면 대학교 때 국내 여행을 하면서 떠돌아 다니는 것에 기본기가 연마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행 자유화되고 나서도 별로 여행갈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교직에 몸을 담고 나서, 방학이라는 시간이 주어지고 내가 번 돈들이 통장에 있으니까 자연히 떠나게 되더군요. 쉽게 말해서 여가 시간이 생긴거지요! 그런 여행을 세 번 하는 동안 그냥 마구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번 마구 돌아다녀보자 그렇게 생각한거죠! 특히 91년도 치앙마이에서 트레킹을 함께 했던 영국인을 스리랑카의 아담스피크에서 다시 만났는데 중남미 여행한다고 스페인어 공부하고 있더군요. 짧게하는 여행은 안된다고 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떠났습니다.

3. 가장 오랫동안 여행한 기간은 얼마나 되는가? 그 긴 여행동안 당신이 느끼는 외로움의 깊이는 얼마나 되던가?
답) 93년 5월부터 94년 4월까지 11개월 동안 중남미를 여행했습니다. 뭐 그렇게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중간 중간에 애인이나 여행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젊어서 물불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매일 다른 침대에서 다른 베개를 베고 자는 것이 쉽지은 않았지만 정말 익숙하게 해내었습니다.

4. 가장 오랫동안 여행한 나라와 그 곳에 특별한 애착을 같는 이유는?
답) 체류 시간으로 가장 오래 있었던 나라는 미국입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여행만으로는 멕시코와 페루를 가장 많이 돌아다녔다고 생각합니다. 방문 횟수로는 태국이 으뜸이고, 인도네시아도 만만찮게 갔네요. 과테말라의 안띠구아에도 거의 두 달이나 머물렀구요!

볼거리 측면에서 세 나라를 꼽으라면 멕시코, 페루, 인도네시아입니다. 그리고 애착이 가는 나라는 콜롬비아와 태국입니다. 사람들이 좋았습니다. 아마 이민가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나라들입니다.

5. 여행에 있어서 당신이 최우선 순위로 두는 것은 무엇인가?
답) 본전 생각입니다. 즉, 만족도이지요. 과거에는 볼거리에 상당히 중점을 두었는데, 요즘은 편안함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래도 여전히 여행의 최대 매력은 새로움이겠지요. 새로운 곳을 갈 곳인가? 아니면 정말 좋았던 곳을 다시 갈 것인가로 조금 고민합니다.

6. 여행이 일상이 되어 버렸을 때 여행지에 도착한 당신은 새로운 곳이라 할지라도 익숙함을 느끼기 마련인데 그 때 느끼는 생각과 그에 대한 대처법이 있다면?
답) 개인적으로는 어떤 곳에 가도 새로움은 있습니다. 하다못해 일요일 저녁 무렵에 홍대 전철역 앞 버거킹 앞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으니까요! 다만 익숙한 곳에 가면 더 새로운 곳에 갈 수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기회비용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더군요.


7.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만큼 당신이 성숙하겠지만 새로운 세상을 봄으로 인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 당신이 잃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면? 여행이 주는 최대의 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 안정감이겠지요! 보통 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하는 프리랜서의 아픔 등... 왜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살겠습니다. 가장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있기 때문에 세상은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8. 처음으로 돌아가 여행을 처음으로 떠나려 한다면 어떤 것을 가장 잘 준비해 떠나고 싶은가? 지금도 여행하면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다면?

답) 외국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뻔뻔함을 키우는 연습...

9.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단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여행을 통해 생긴 못 된 습관은?
답) 조직 생활에 적응이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떠날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요. 일상생활에 대해서도 조금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10. 여행을 한 만큼 당신도 남들보다 여행에 관한한 우월하다고 느끼는가? 혹여 평범하게 사는 삶이 재미없다거나 왜 저렇게 사나하는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답) 저마다 각자의 길을 간다고 생각합니다. 버림으로써 얻는 것들이 있는데 버릴 생각은 않고 얻을 것만 생각하면서 항상 고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조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견디지 말고 살아야지요.

11. 때론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텐데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택하라면 당신은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가? 그 이유는?
답) 위에서 밝혔듯이 콜롬비아와 태국입니다. 인정이 넘친다는 것 이외에 결국 나는 그곳에 가도 한국 사람이겠지만, 혹시나 자녀가 생긴다면 그들은 내가 정착한 나라의 국민이 되겠지요. 콜롬비아나 태국 정도면 그 나라 여권가지고 이곳저곳을 다니기에 괜찮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12. 깊어 가는 여행이 당신을 무섭게 만든 적이 있는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여행을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얻을수 있을 것 같은가? 그만큼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본적이 있나요?
답) 여행은 여가의 선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시간이나 경제적인 여유와 조금의 용기가 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일상에 한 발을 두고 돌아다니는 방법을 택하지 않을까요? 돌아와서 뭐할까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떠난 적은 없습니다. 가장 불안했던 여행 중에 하나가 지난 경울 인도 여행이었는데, 돌아와서 먹고사는 일에 쉽게 풀렸습니다.

13.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본 늙어서의 모습 중 가장 보기 좋았던 모습은 어떤 것이 있는가?
답) 과테말라에서 같이 학교를 다닌 사람 중에 60세 늙은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나 봅니다. 그리고 태국의 나나 호텔의 1층 디스코텍에서 만난 일흔의 할아버지에게서도 상당히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젊은 태국 여자를 자신의 약혼녀라고 소개했는데, 두 분이 서로를 위하는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14.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늙어 갈 것 같은가?
답) 지금이 고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꿈은 작은 살사 바를 운영하면서 매일밤 음악을 들으면서 맥주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 여행을 가겠죠? 김찬삼 선생님 따님이 몇 년 전인가 외환카드 사보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어려서 세상을 돌아다니라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아버지를 원망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어느날 아버지의 강연회에 갔는데 강연을 듣는 사람에게 꿈을 주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답니다. 항상 다른 사람에게 꿈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는 항상 만족감이 있어야겠죠.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우러나는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15. 가장 인상적인 여행자의 모습은 누구였나? 당신의 여행 중 당신의 여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다면 누구를 꼽겠는가?
답) 어릴 때는 마젤란이나 드레이크 같은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김찬삼 선생님의 화보집도 저를 자극했고요... 박 경우씨의 <배낭족>부터 현실적으로 계획을 짜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곤 최근에 와서는 하루키처럼 상주여행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고요. 나의 가장 큰 스승은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론리플래닛 South East Asia on a shoestring 제 6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6. 한국인이기에 여행에서 느끼는 한계를 경험한 적이 있는가?
답)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너무 볼거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 보려고 하는 경향도 있었고, 언제 내가 다시 여기 올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어디든지 다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수그러들었습니다. 30여년 동안 살아온 치열한 삶의 방식을 타파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경제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도...

17. 여행도 기술이 있다면 어떤 기술이 필요한가? 여행을 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무엇인가?
답) 연습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워낙 국내여행으로 단련이 되었기 때문에 외국 여행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서울역에서 기차표 사 본 사람은 어디서든지 기차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영어 잘하는 신세대보다는 국내 여행 많이 해본 386세대가 훨씬 외국 여행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18. 여행과 현실의 괴리감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있는가?

답) 항상 계획을 짜고, 여행에 대해 꿈을 꾸고, 여행에 관한 책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집니다. 지도를 딱 펴놓고 계획을 짜고 정보를 수집해 보는 거지요. 그래도 미칠 것 같으면 관악산에 올라가 비행기를 처다보곤 했습니다. 비행기가 아주 가까이 보이거든요.

19. 여행을 여행이 아닌 일로서 여행을 할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요?

답) 별로 재미는 없지만, 그냥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할까? 비즈니스적인 여행에서도 아마 항상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가 카메라 없이 여행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20. 혼자하는 여행이 좋은가(자문자답입니다)?
답) 참 편안하지만, 매일밤 벽을 긁게 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여행하면 아주 좋습니다. 혼자 보는 아름다운 석양과 찬란한 문화유적이 별로 영양가 없다는 것을 여행을 시작한 지 한참 후에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나이를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좋겠습니다.